2019.11.14.
재도 수인물 보고 싶다.. 현생에 치여 매일매일 고달프고 집안에 정식으로 인사 드리고 커밍아웃 하고 당당히 사귀길 바라는 애인이랑 뜻이 달라 헤어진지 2년 훌쩍 넘겨서 외롭고 그런 지친 현대인 김됴영씨. 원래 뭐 해먹는 것도 좋아하고 그랬는데 맨날 녹초가 되어서는 집에 오니깐 집에서 밥 먹기도 귀찮아 그냥 매일 컵라면 이런 걸로 대충 때우고 소파에 누워서 티비나 보다가 까무룩 잠들고 그런 다소 무기력한 하루하루. 집안 막둥이 귀염둥이로 사랑 받고 자라다가 크고나선 줄곧 연애 해왔던 탓에 이렇게 온전히 혼자 지내는 건 또 오랜만이라 괜히 좀 외로움 사무친다.. 날씨까지 갑자기 차가워지니까 뭔가 더 외로운 거 같고 친구들 불러 놀기엔 다음 날 출근이라 또 부담스럽고. 주말 되면 밀린 집안일 하고 낮잠 깜박 자고 일어나면 또 밤중이라 드라마 보다가 새벽이나 보내고 그런 무료한 됴영씨. 그러다 어느날은 나이 먹어서 괜히 감성적인 것인지 티비 보는데 심취해선 눈물 질끔할 장면 아닌데 울컥해서 울어재낀다.. 원래 눈물이라는 게 내내 참다가 한번 터지면 왈칵 쏟아지는 거라 됴영씨 자기가 왜 우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엉엉 울고 있음. 첨엔 나 왜 울지 어엉엉ㅠㅠ 하더니 나중엔 아냐 나 울 이유 있어ㅠㅠ 나 외로워 어엉엉ㅠㅠㅠ 하며 목 놓아 울다 잠든 됴영씨. 그러다 대문 밖에서 자꾸 뭐가 끼잉대는 소리에 새벽 일찍 잠이 깹니다.. 이웃집 개키우나 조용히 좀 시키지 하고 다시 자려는데 문득 이웃집 얼마전에 이사 가서 빈집인 거 떠올리고 스르륵 눈이 떠짐. 근데 이 낑낑대는 소리는 멀어지지가 않는 것. 첨엔 꿈인가 잘못 들었나 했는데 뭐 박박 긁는 소리도 나고 그래서 서얼마.. 하고 불안감을 느끼며 집 대문 열었는데 박스에 개가 한 마리 있겠지. 근데 아주 강아지는 아녔음 좋겠다. 애기 같긴 애기 같은데 아주 애기는 아닌. 한살 좀 넘겼나 싶은 정도. 박스에 Don’t cry. You can call me JAY 하고 잘도 써있고 언제 낑낑댔냔 것처럼 얌전히 앉아있는 하얀 강아지. 허어~? 됴영 좀 어이없어서 주변 아래 계단까지 누가 혹시 금방 놓고 간 거 아닌가 싶어 살피지만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도 없음. 그 사이에 강아지는 박스 밖으로 나와서 열린 문틈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됴영 주변 살피고 돌아와서 보는데 빈박스라 어라? 하고 또 살피는데 언제 집에 들어간 건지 됴영 소파 아래로 떨어뜨린 담요에 얌전히 앉아서 하품하고 있는 강아지 보고 황당함. 야 나 너 못 키워~ 난 내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들다구우 얌전히 앉아있는 강아지 보고 하소연 하는 됴영. 근데 씨알이 맥힐리가 있나. 나 맨날 일도 늦게 끝나구우~ 어? 산책 시킬 여력도 없고? 열심히 말하는데 깡 소리 짖고 헥헥 대는데 특이하게 흰 털인데 양 뺨에 사람 보조개 처럼 그 부분만 털이 베이지색이라 꼭 보조개짓고 웃는 것처럼 보여 됴영 잠시 귀여움이 할말을 잃음. 너어.. 잠시만이다 그럼.. 개한테 말해봤자 알아먹을 리도 없고 그래서 혹시 몰라 이면지 몇장 화장실 대용으로 깔아두고 주변 유일한 애견인 턔용한테 강아지 키울 때 조언 이런 거 카톡 남겨놓을 듯. 처음엔 책임 질 생각 없어서 잠깐 데리고 있고 다른 곳 알아보려던 됴영이지만 사람 일 맘대로 될 리가 없고.. 우리 보조개 박힌 졔이는 누군가가 키우다 보낸 것처럼 똑똑하게 화장실도 다 가리고 말도 잘 알아먹고 그러니 얼렁뚱땅 오래 같이 살겠지.. 강아지 키우면서 매일 산책도 시키고 가끔 사고도 치는 거 수습도 하고 맨날 사료만 먹이는 거 좀 그래서 인별 구경하면서 간식도 만들어 먹이면서 자기 밥도 챙겨먹고 외로울 틈도 없이 일년 정도 뚝딱 지나갈듯. 주말에 가끔 턔용이 루비랑 놀러도 가고. 그때면 이상하게 졔이 됴영이 품에서 안 떨어져서 턔용 좀 신기해하겠지. 니네 졔이는 나랑 루비 별로 안 조아하나바 하면서.
그러다 또다시 날 차가워진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까 졔이가 온지 일년 된 날을 알아차림. 바빠서 생각 안 해보다가 어떻게 만났더라.. 하고 생각해보는데 전날 자기 엉엉 울었던 거 문득 기억이 남. 그래서 박스에 돈크라이 써있던 거 꼭 자기보고 한 말 같기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싶어서. 그러고보니 그 날 이후로 혼자 외로워 울던 일도 없단 걸 깨닫게 됨. 그러니까 갑자기 나타났던 졔이가 고마워지는 거지. 그날 퇴근 서둘러서 집에 가서 졔이 줄 강아지 케익도 만들고 분주하게 준비해서 됴영이랑 졔이랑 만난지 일년 기념한다. 옆에서 얌전히 꼭 뭐 다 아는 것처럼 꼬리 살랑살랑 흔들고 헥헥대는데 또 특이한 보조개짓고 웃는 것처럼 보여서 됴영 새삼 행복해지겠지. 목덜미 쪽 붙잡고 부비부비 해주면서 코 한번 슬쩍 맞대고 눈 마주치면서
제이야 내 곁에 와줘서 고마워. 너가 있어서 나 이제 하나도 안 외로운 거 같아. 오래오래 함께 하자.
그럼 졔이 또 뭐 다 알아듣는 것처럼 작게 왕 짖어주는 거에 머리 쓰다듬어주고 밥 먹고 기분이다 싶어 됴영 혼자 와인 따서 마시고 나른해지면 같이 붙어서 잠드는 평온한 하루를 마무리 하겠지.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 지각하겠어 어제 많이 마시더라니”
.....?????????
낯선 남자의 낯선 목소리가 친근한 말투로 깨우는 거 잠결에 흘려듣던 됴영 계속 흔들어 깨우는 것에 뭐지....???????? 하면서 퍼뜩 일어남. 약간 혼 빠져나간 정신으로 앞에 앉은 남자 보는데 하필 이 남자 상탈이네.. 간밤에 나 뭐했어 어디갔어 하고 정돈 안되는 뒤죽박죽 머릿속 수습도 못하고 주변 둘러보는데 자기 집 맞아.. 얼른 자기 이불 들춰보는데 옷도 얌전히 잘 입고 있어.. 그럼 뭐야 이 남자...? 남자 허리춤에 걸쳐친 이불 확 걷어버리는데 다행스럽게 자기 바지 입고 있다.. 엥? 다행? 내 바진데? 얼빠진 표정으로 뒤늦게 남자한테 누.. 누구세요? 그럼 남자 수줍게 웃으면서 그러겠지..
“나잖아. 나, JAY.”
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아침 잠 화들짝 깨는 됴영. 근데 됴영 일어나니까 기다렸다는 것처럼 졔이 됴영한테 덤벼들어서 끌어안고 머리 부벼대는통에 됴영 다시 드러눕게 됨. 낯선 남자가 끌어안고 부비적대는 것에 일차원적으로 좀 당황하는데 가까이서 느껴지는 베이비파우더 향 같은 익숙한 향이라든지 항상 오른쪽 목덜미에 덤벼들던 특이한 버릇같은 것이 느껴져서 어라,, 싶음. 밀어내려다가 졔이라고? 개가 어떻게 사람이... 나 아직 꿈꾸나? 오락가락하는 됴영. 건성으로 끌어안고 있던 졔이가 먼저 일어나더니 됴영 일으킴. 일어나~ 또 늦어서 뭐 까먹고 가지말구. 졔이 손에 이끌려 씻으러 욕실 들어가면서도 내내 얼떨떨한 됴영.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그것도 아닌 거 같은데..? 도둑인가? 아니 그럼 우리 졔이는 어디갔어!? 씻다말고 갑자기 욕실 문 벌컥 열면서 졔이야!!!! 쩌렁쩌렁 외치는데 놀랜 눈으로 부엌에서 뒤집개 들고 왜 왜!! 무슨 일이야!! 하면서 달려나오는 사람 졔이. 아 아니 그쪽 말구염... 울상짓는데 그럴 줄 알았단 것처럼 다시 등 떠밀어 욕실로 밀어넣고 이제부터 술 금지야 하는 졔이.. 거의 반 울다시피하면서 어푸어푸 세수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우리 졔이가 아니다 싶은 됴영. 뒤집개를 들고 나왔자나요ㅠㅠ 막말로 진짜 어제까지 개였다고 쳐도.. 어떻게 그런 사용법을 알겐냐구요ㅠㅠ 울 졔이 어디가써ㅠㅠ 그치만 직장의 노예는 일단 착실하게 다 씻고 나온다,, 나오기가 무섭게 얼른 옷 입구 오라면서 옷방 보내는 것에 또 한숨 푹푹 쉬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저건 다시봐도 울 졔이가 아니다. 왜냐, 앞치마까지 하고 있었다구요.. 것도 상탈에 앞치마라니.. 아직 출근까진 시간 좀 있으니까 신고 안한다 하고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해야지 하면서 식탁에 앉는데 잔해물(?)들 보고 음.. 어제까지 개 맞았나보네.. 싶은 됴영. 정체불명 시커먼 음식들 보고 그래도 성의가 있으니까 잘먹을게요... 하면서 뒤적거리다 근데, 하고 본론으로 들어감.
응 됴영. 왜?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그렇게 물어보는데 너무 익숙한 보조개 때문에 또 어라.. 싶은 됴영. 가만보니 피부도 엄청 하얗네? 설마.. 하다가 아냐 정신차리자 김됴영 하고는 일단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물어보는데 졔이 뭐 그런 걸 묻냐는 것처럼 픽 웃더니
됴영이 알려줬잖아, 우리 처음 만났던 날, 눈 퉁퉁 부어서는 나한테 그랬잖아. 너 이름이 졔이라고, 안녕 난 김됴영이야 당분간 잘 지내보자 라고.
눈 그렇게 퉁퉁 붓진 않았다고 반박하려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에 됴영 잠깐 할말을 잃을듯. 그런 됴영 보면서 졔이가 쐐기 박듯
아직도 못 믿겠어? 그럼 그거, 지난달에 내가 너 선물 받은 구두 씹어놨잖아.
너 그거! 그래! 그거 왜 그랬어!?
그거 루비주인이 준거잖아, 나 질투해. 별로야.
안니... 뭐요... 질투?
그래, 개들은 원래 질투가 많아
개들이라뇨... 얼떨떨한 됴영 힐끔 보고 자기가 봐도 맛없는 음식이라 뒤적대면서 하나 더 말해줄까? 하더니
전에 더울 때 내가 됴영 부엌 옆에 쓰레기통 엎어서 거실까지 다 더럽혔잖아 기억나?
헐... 기억나 나 그날 이후로 쓰레기통 없앴잔나...
됴영 그날 루비주인 만나러 갔잖아 그래서그랬지
너무 황당한 됴영. 이쯤되니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음. 근데 어쩌다 이렇게 만나게 된 건지 모르겠어서 개였다 사람인 건 둘째치고 물어봄.
그래 뭐 원래 개였다고 해, 근데 그럼 원래 주인은 누구야? 원래 사람이었어? 그동안 어떻게 감추고 지냈어?
그말에 묘하게 미소 지으면서 고개 저음
처음부터 주인은 됴영이야. 울었잖아 외로워서. 그래서 보내날 보내준거야. 박스에도 써있었잖아. 울지말라고.
아...
어쩐지 그거 묘하게 됴영한테 하는 말 같기도 하더라니.. 가만히 말 들으면서 과거 떠올려보는 됴영 힐끔 보고 계속 말 이어감
됴영이 외롭지 않고 싶다고 매일 빌어서 내가 왔고.. 나는 원랜 사람 아니었어.
엥? 그럼?
됴영 만나고 나서 내가 매일 빌었어. 됴영 더 안 외롭게 해주고 싶어서, 안아주고 싶어서.. 사람 되게 해달라고.
안 들어주실 줄 알았는데 들어주셨네 중얼거리면서 됴영 못 쳐다보고 음식 콕콕 쑤시면서 그런 말 하는 졔이 가만히 보고 있던 됴영 뭔가 코끝 찡해지는 기분임. 그러니까 결국 눈 앞의 이 사람은 사람이든 개든 처음부터 됴영 본인의 외로움 때문에 존재하게 됐단 거니까. 그리고 정말로 됴영의 외로움은 사라졌으니까. 그렇잖아도 전날 졔이 덕분에 외롭지 않다 생각해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됴영을 더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 사람이 됐다는데 뭔가 감동이기까지 할듯.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생각해줄까, 바꿔 생각하면 됴영 본인도 누군가를 위해 말도 안 되는 소원 매일처럼 빌면서 인생 바꿀 자신은 없었으니까. 그런 졔이인데 이제 생각하니까 못 알아봤단 사실이 갑자기 미안해지는 됴영. 괜히 시무룩해보이는 머리꼭지 보고 있다가 다가가서 졔이 안아주는 됴영. 됴영이 안아주니까 또 얌전히 품에 안긴다. 첨엔 포메인줄 알았다가 점점 커져서 아니.. 스피츠인가.. 하다가 더 커지길래 사모예드였나... 했었던 거 무시 못하게 사람이 되었어도 체격이 좋아 품에 안겨도 한 품에 쏙 들어오지는 않고 좀 버겁게 안겨오는 졔이. 그러다 가만히 있던 졔이가 팔 들어서 됴영 꽉 마주 안자 됴영이 졔이 품에 안긴 꼴 되어버림. 어정쩡한 자세긴 한데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등 토닥토닥 하면서 졔이 어깨에 턱 올리곤 나지막하게 고마워. 졔이 아무 말 없이 좀 굳은 것처럼 있는데 아랑곳않고 다시 인사함.
제이 네 덕분에 나 진짜 한나도 안 외로워써.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 글구.. 못 알아봐서 미안내..
됴영 말에 고개 세차게 가로저으면서 됴영 더 꽉 끌어안아주는 졔이.. 어리광부리는 거 보니까 진짜 졔이같네 생각하고 웃으면서 앞으로도 우리 잘 지내자, 그러니까 고개 끄덕이는 걸로 대답 대신 하던 졔이 됴영한테 떨어지면서 진지하게 그런다.
근데 됴영, 나 이름 바꿀래.
...? 갑자기?
응. 나 이제 졔이 말고 쟤현이라고 불러줘, 정쟤현.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하고.. 또 같이 밖에 나갔는데 키우던 개 이름이랑 똑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보다야 나을 거 같아서 바꾸는 건 상관이 없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근데 왜 갑자기 그 이름이야?
됴영이 애인 이름이잖아.
장난치는 것처럼 실실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에 됴영 잠시 뭔소린가 떠올리다가 언젠가 소개팅 해준다는 게이친구 거절하려고 썸타는 사람 있다고 둘러대면서 아무 이름 말했던 게 퍼뜩 생각남.
아 애인아니거든!!
알지알지, 그니까 됴영 나 이제부터 쟤현이야. 정쟤현.
놀리는 거 같아서 진심이냐 물었더니 진짜라고 눈 빛내면서 고개 끄덕이는 졔이.. 아니 이제 쟤현. 쟤현이고 졔이고 아무렴 어떠랴 어쨌든 오랜만에 누구랑 이렇게 끌어안고 있으니까 좋긴 좋네 싶어서 안 떨어지는 됴영. 쟤현이 근데 등 살살 쓸어주면서 그러겠지. 됴영, 지각하겠다. 그럼 또 놀래 떨어지면서 부랴부랴 나가려다 집에서 하루종일 또 됴영 기다리고 있을 이제는 쟤현이 되어버린 졔이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심란해짐. 나가려다 쟤현한테 와다닥 다시 달려가서 저도 모르게 습관처럼 이마에 뽀뽀하려다 아차 싶어서 그냥 꽉 끌어안고 일찍 올게, 하는데 쟤현 웃는 낯으로 뽀뽀해도 되는데 같은 소리나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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