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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도] 동화 같은 재도

PeaBit 2022. 5. 1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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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9.

 

가끔 동화같은 그런 재도도 보고 싶다. 아까 둘 다 보고 싶다 하셨는데 그래도 왕자가 더 많아서 성에 갇힌 왕자 쟤현이랑 우연히 길을 잃고 그 성을 발견한 됴영이 같은 그런 재도.

미녀와 야수같은 동화처럼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때문에 갇힌 쟤현이. 쟤현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한참 위에서 훔친 마녀의 꽃 때문에 저주에 걸린 것. 너 같이 손버릇이 나쁜 아이는 평생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 못하도록 성에 가둬놔야한다면서. 저주를 푸는 방법은 성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성 안에 갇힌 그를 자유보다 더 사랑해 평생을 성안에서 함께 있겠노라 약속해 깨지지 않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없겠지. 우연히 성에 들른 어떤 여인이라도 왕자님 같은 쟤현의 가문 사람들을 보면 첫 눈에 사랑에 빠지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유가 사랑을 이길 순 없어서. 사랑으로 잠시 눈이 먼 동안 평생을 약속하고 아이도 낳고 하지만 결국은 성 밖의 자유를 찾아 몰래 달아나버리고 그게 몇 대 째 반복했겠지. 다들 필사적으로 저주를 풀고 싶어 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음. 그러다 쟤현에게까지 저주는 내려왔는데 성 안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난 쟤현의 아버지를 보내고 나서 혼자가 된 쟤현. 혼자가 된 쟤현은 굳이 저주를 풀겠다는 생각이 없음. 그냥 제 위의 조상들의 잘못으로 생긴 일이지만 더 이상 물려주고 싶지 않아 스스로 그 저주를 끌어안고 자신의 선에서 끝내겠다고 생각함. 아무리 숲 깊은 곳에 있는 성이라 하더라도 쟤현 가문의 저주, 타인에게는 그저 신비롭게 느껴질 뿐인 저주와 그렇게 가문 자체가 잘 생겼다 왕자같다더라 하는 말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쟤현은 그것조차 막기 위해 스스로 성의 문도 굳게 잠궈버림. 쟤현의 조상들은 일부러 향기를 내뿜어 유혹하는 꽃처럼 성문을 활짝 열어놨는데 쟤현은 다른 선택을 한 것. 쟤현의 가문의 일을 도와주던 사람들은 그런 심성의 쟤현을 어릴 때부터 봤으니까 이 큰 성에 혼자 지낼 왕자님이 조금은 걱정이 됨. 성 문을 굳게 잠그고 돌아서는 쟤현에게 그래도 외로운데 친구는 필요하지 않겠냐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굳이 밀어내지 말라며 성 문은 열어두길 바라지만 쟤현은 그냥 웃으면서 자긴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함. 봐야할 책도 많고, 쓰고 싶은 시도 많고, 가꾸고 돌봐줘야 할 장미도 많다며. 그렇게 혼자 남겨진 쟤현. 성 문을 굳게 닫고 성 벽으로 덩쿨들이 무성하게 자라 성을 아예 숲 안으로 사라지게 할 것처럼 되었는데도 신경쓰지 않고 덕분에 쟤현 가문과 쟤현의 성은 서서히 소리없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사라지고 잊혀짐.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들 때문에 사람이 찾아오기 힘들 수준이 되자 쟤현은 가문의 일을 봐주는 사람들에게도 자유를 줌. 더 이상 제 가문에 얽매이지 않길 바란다며 조상들에게서 내려오던 재산 일부를 건네주며 모두에게 쟤현 자신에겐 없는 자유를 선사함. 덕분에 쟤현은 완벽한 혼자가 됨. 쟤현의 성을 찾는 건 달빛, 가끔은 길 잃은 산짐승, 쟤현이 준비해둔 모이를 쪼으러 오는 새들 정도. 혼자 넓은 성 안에서 지내다보니 아예 말을 할 일이 없어서 가끔 혼자 노래를 부르는 걸로 말하는 법을 잊지 않고 지내는 쟤현. 가끔은 성 안으로 부서지듯 쏟아지는 햇빛을 보면 나가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해.

됴영은 일하는 곳에서 필요로 해 마른 나뭇가지를 찾으러 낯선 마을의 숲을 찾게 됨. 그리고 흔하고 많은 동화에서처럼 갑자기 내린 눈때문에 길을 잃는게 원인이겠지. 숲 가장자리에서 나뭇가지만 줍고 가면 될 일이라 혼자 용감하게 길을 나선건데 예상치 못한 눈 때문에 숲에 갇혀버림. 나가고 싶은데 숲이라는 게 원래 뱅뱅 돌수록 깊숙하게 들어가는 거라 됴영은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상황임. 날은 더 빠르게 어두워지는 것 같지, 나뭇가지 끌어안고 있는 손은 빨갛게 얼어가고 있지, 길은 도무지 모르겠지. 겁나서 어쩔 줄 모르는데 쟤현의 성이 나타남. 처음엔 성인지 모르는데 저만치서 어떤 작은 불빛이 보여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 불빛 보고 무작정 걷기 시작함. 성 안에서 눈이 오는 걸 보면서 책을 보고 있던 쟤현은 밖에 산짐승들이라도 들어오게 해야하는 거 아닐까 눈발이 점점 세지는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저 숲 나무들 사이에서 뭔가 빠르게 움직이는 걸 봄. 길잃은 산짐승인가 싶어서 눈 가늘게 뜨고 살피는데 눈에 푹푹 파묻히면서 넘어졌다 일어나 허둥대면서 걸어오는 모습은 사람이야. 어쩌다 이 밤중에 이 숲에서 길을 잃은 거지. 저러다 늑대한테 공격이라도 받으면 어쩌려고. 성 문 굳게 닫았던 쟤현이지만 눈 오는 밤중 길잃은 사람을 성 밖에 버려둘 순 없어서 황급히 달려나감.

한편 됴영은 성 앞에 도달하고 한 번 좌절함. 덩쿨에 휩싸인 성문이 굳게 잠겨있는데 여기서 아무리 두드린다고 해도 안에 있는 사람에겐 절대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이대로 여기서 얼어죽거나 늑대 밥이 되겠구나 싶고 너무 춥고 지쳐서 이젠 그냥 잠이나 자고 싶단 생각만 드는데 기적처럼 무거운 성 문이 열림. 거의 실신 직전이던 됴영은 살았단 생각에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열린 문으로 다가가는데 안에서 나타난 쟤현을 보고 놀라겠지. 왕자님인가? 싶어서. 쟤현을 보고 눈만 깜빡이면서 달달 떨고 있는 됴영을 보고 쟤현이 얼른 다가가 챙겨온 담요를 둘러줌. 자기 얼굴 보고 놀란 것도 모르고 그냥 이 사람 너무 힘들었나보다. 싶어서.

내내 숲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추위와 공포에 떨면서 헤매던 됴영은 쟤현의 성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살았단 생각에 안도하면서 몸에 힘이 빠져 주저 앉을 뻔함. 쟤현이 재빨리 부축해준 덕분에 그러진 않았지만.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됴영을 보고 쟤현은 분주해짐. 아마 추워서 굳은 거라 생각되지만 꼭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고 있는 나뭇가지들부터 품에서 좀 떼어놓고 따뜻한 카펫과 양털이 깔린 벽난로 앞으로 데려가 앉혀놓고 눈에 젖어 버린 신발과 양말도 동상 걸리기 전에 벗겨주고. 담요 하나로도 부족해서 하나 더 끌어다 또 덮어주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을 것 같아 부엌의 불도 켜고 그 전에 따뜻한 모과차부터 한 잔 내어주고. 갑자기 따뜻해지니까 됴영은 모과차 한 모금에 온 몸의 피로가 다 풀리는 거 같아 잔 들고 아슬아슬하게 졸았다 깼다 하고 있는데 작은 웃음소리 들리면서 손에 쥐어진 잔이 빠져나감. 놀라 눈 떠보니 작게 웃으면서 그런 됴영을 보고 있는 쟤현. 눈이 마주치니까 웃으면서 간단하게 뭘 준비했다고 일단 배 좀 채우고 쉬는 게 나을 것 같겠대. 추위 조금 가신 몸에 여전히 힘이 없어서 휘청대는 거 쟤현이 붙잡아 일으켜줌. 피곤할 것 같아 빨리 준비하느라 조촐한 식탁이라며 미안하다고 하는데 따뜻한 스프며 부드러운 빵, 구워진 고기에 과일까지 있는데 대체 뭐가 조촐하다는 건지. 평소 됴영이 일하다 먹는 패스트푸드 같은 음식들 보다 훨씬 탄탄한데. 놀란 토끼눈으로 전혀 조촐하지 안잔나여! 하는 반응이 내심 기분 좋은 쟤현. 날 밝으면 더 맛있는 거 해주겠다고 오늘은 이해해달라는 말에 됴영 감동 받겠지. 이 숲속에 이런 왕자가 살다니. 됴영 혼자 먹게 하기도 좀 그래서 쟤현은 자긴 이미 저녁을 먹었음에도 앞에서 같이 스프 먹으면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함께 함. 따뜻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 들어가니 컨디션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오는 됴영이라 너무 맛있다는 이야기도 재잘재잘하면서 서로 통성명도 하고 어쩌다 길을 잃게 됐는지도 얘기하고.

식사 마치고 나서는 쟤현이 안내해주는 방에서 됴영은 금방 곯아떨어져서 하루 피로 다 풀리도록 잠들고.. 쟤현은 의외로 쉽게 잠들지 못함. 혼자여도 괜찮다고 내내 다독이며 살아왔는데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됴영 덕분에 텅 비어있던 성 안이 왠지 꽉 채워진 느낌도 들고 외롭다는 생각 일부러 하지 않고 지내왔는데 됴영이 가고 나면 다시 혼자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심란해짐. 바깥의 모든 소음도 다 죽일 것처럼 무겁게 내리는 눈 때문에 사방은 조용한데 옆방에 됴영이 잠들어있다는 걸 생각하면 뭔가 마음 한 켠이 따뜻한 것도 같고 그래서. 가꾸는 꽃나무, 돌봐주던 산짐승, 모이 챙겨주는 새들과 다르잖아. 누군가에게 온기를 나눠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섞고 눈을 마주치고 가끔 스치던 손끝에 괜히 쑥스러워 머쓱하게 웃고 하던 것들은. 그런 감정들 모르고 사는 편이 나았는데 한 번 알아버렸으니까 심란한 쟤현.

다음날 아침 푹 자고 일어난 됴영은 잠시 여기가 어디더라 생각할듯. 그러다 아 맞네, 하고 놀래 푸득 일어났다가 창밖을 보는데 온통 새하얌. 해가 떴는지도 모르겠고 몇 시나 됏는지도 모르겠고. 눈이 계속 내리고 있어서. 슬슬 나가볼까 하다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계속 준비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푹신하고 따뜻한 침구와 방안의 훈훈한 온도가 너무 좋아서 잠시 게으름 부리고 졸았다 깼다 반복할듯. 이미 쟤현은 일찌감치 일어나서 부지런하게 아침 식사를 차리고 있다. 계속 침대에 뒹굴거리면서 게으름 부리다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서 아차 싶어 후다닥 나가니까 쟤현이 웃으면서 맞이함.

 

잘 주무셨어요? 간단히 씻고 오세요. 아침 차렸어요.

 

자기가 너무 민폐끼친 거 같아서 미안한 됴영 얼른 씻고 오는데 그런 됴영 가만히 보고 있던 쟤현이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와 머리카락을 정돈해줌.

 

토끼 귀 같네요.

 

잠결에 까치집 지어서 불쑥 솟은 머리카락 가볍게 눌러주면서 그런 이야기 하는데 눈 앞에 보이는 보조개가 너무 달콤해서 됴영 잠시 말을 잃을듯. 이제 밥 먹을까요? 하는 말에 됴영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 쟤현과 마주하고 앉음. 식탁이 넓어서 둘 사이의 거리가 좀 먼데 됴영은 그게 좀 불편하다고 생각해. 점심도 먹어야 한다면 가까이 앉고 싶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러다 자기가 염치없는 생각 한 것 같아서 숟가락으로 스프 휘휘 젓다가 대뜸 말하겟지.

 

미안해요.

네? 갑자기 뭐가요?

제가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폐만 끼치는 거 같아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수그러드는 머리꼭지 가만히 보고 있던 쟤현은 뭔가 반은 심란하고 반은 설렌 오묘한 기분이 듦.

 

괜찮아요.

그래두..

그리고 갑자기 불쑥 찾아온 게 아니라 조난 당한 걸 제가 도와준 거잖아요. 도울 수 있어서 기뻐요. 편히 쉬었으면 좋겠어요.

 

미소짓고 그리 대답하는 쟤현 보고 됴영은 또 왕자님 같다고 생각해. 책에서 봤던 어린왕자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마주보고 시선 맞추다가 됴영이 씩 웃음.

 

그럼 저 완전 신세 좀 질게요. 좀 귀찮아도 이해해줘야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누가 절 귀찮게 한 적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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